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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사상] 자유의 전체성

by Rovin Son 2021. 5. 20.

 한국 보수는 항상 신세대에게 인정을 못 받았는데 그 이유가 있다. 보수는 이론적으로 정립한 게 아무것도 없다. 하다못해 보수주의의 성전이라고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고찰)'조차 2000년대 이후에 등장했다. 보수는 게을렀다. 해방되고 민주화 세력에게 나라를 넘겨주기까지 최소한 40년 이상의 시기가 있었고, 민주화 이후에도 세 번이나 집권했지만 보수는 이론적으로 정립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보수를 자처하는 국민들은 민족주의, 자국 우선주의 식의 공리주의가 보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고 한국 정치는 그 결과 조금씩 신 공산주의(사회주의)로 변해왔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보수주의의 근간은 왕이 있는 영국이나 천황제를 하는 일본에 어울리는 것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우리 보수주의의 기본 모델은 미국식이다. 건국 때부터 이 점이 기본적으로 세팅돼 있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정권이 계속 바뀌니까 효(孝) 사상 근본의 '군사부일체'식의 보수주의 이론이 나오는데, 그러면 국민과 계속 부딪히게 된다. 국민이라는 정치적 개념도 헌법이 다른 주권이나 영토와 마찬가지로 헌법이 소환한 개념이다. 이런 정치사상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국가도 국민도 무엇하나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다.

 

미국식 보수주의의 근간인 자유주의 보수주의 모델은 신을 절대자로 본다. 모든 정치는 종교로부터 파생된다. 이 종교라는 초월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일관된 정치사상은 처음부터 성립할 수가 없다. 일본 보수주의의 모델은 천황을 신과 동격으로 본다. 천황이 신이고 일본 그 자체다. 일본인과 일본을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천황도 일본인과 분리할 수 없다. 모든 일본인은 천황으로부터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박정희 시대의 보수주의 모델이 이 천황제 모델을 따라가려 했다. 해방 이전까지 조선인의 보수주의 모델이 이것이었기 때문에 몸에 익숙했을 것이다.

 

 

우리 보수주의는 미국식 보수주의 모델로 보수한다는 것은 신과 합일(合一)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모든 전체주의 사상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믿는 신념이나 그것을 명령하는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 하기 때문에, 보수주의 모델도 마찬가지다. 다만 미국식 보수주의가 말하는 신과의 합일과 일본식 천황 혹은 나치식 전체주의와 차이점은 무엇이냐면 보편성과 특수성의 대립이다. 군국주의 당시 일본과 나치 독일의 경우로 예를 들면 그들이 말하는 보수는 그들의 국가를 위해 자신과 국가를 동일시 하길 요구한다. 그래서 그들의 모든 악행은 국가의 최종적인 요구임으로 항상 정당화될 수 있고, 국가의 명령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식 보수주의 모델은 명령체계보다 개인의 양심에 우선한다. 설령 국가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양심에 반하는 명령이라면 기꺼이 반대하고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미국 헌법은 권력의 분립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고, 표현의 자유나 개인의 양심을 가장 중요한 헌법적 가치로 봤다. 미국의 경우는 모든 미국민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봤기 때문에, 그들이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모든 일은 신 앞에서 보편적으로 항상 타당하고, 만장일치일 수밖에 없다고 봤다. 이것은 평양에서 공산당원들이 의결을 할 때 김정은의 판단에 따라 만장일치로 찬성하는 것과, 미국이 의회민주주의에서 자기 양심과 소신에 의해 만장일치로 의결되는 것과 전적으로 다르지 않다. (물론 미국의 의회는 다수결, 가중 다수결 등으로 판단의 기준은 다르게 설정돼 있다. 예를 들어 다수결로 하기로 한 판단이 다수결로 통과된다면 만장일치된 것으로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북한이나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이나 나치가 했던 전체성은 어떤 최고 권력자에 의해 내려지는 명령이므로 이 전체성이 항상 전체주의(Totalism)로 향하게 돼 있고, 미국의 경우 이 전체성은 항상 만유주의(Universism, 적당한 번역어가 없다)로 향하게 돼 있다. 전체주의 국가는 그래서 국민을 포함한 모든 국가나 적국을 노예로 삼으려 하고, 유일하다시피 한 만유 주의 국가인 미국은 개개인을 해방하고 세계에 어울리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만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모든 국가가 가지고 있는 전체성이 동일하게 보인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전체주의는 문이 없는 넓은 방이라고 할 수 있고, 만유주의는 방과 방 사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방 안에 있으면 사람들은 전부 방에 갇혀있다고 생각한다. 전체주의는 항상 한계가 있고 귀결점이 있지만, 만유주의는 그 귀결이 없고 무한하다. 그래서 미국의 운명은 세계를 계를 경영하는 것이다.

 

한국 보수주의가 지켜야 할 것도 미국 보수주의와 같다. 신 앞에서의 양심이나 표현의 자유, 그리고 계약의 신성함을 지켜야 한다. 계약은 1:1로 만나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계약에 신성함을 부여하는 것은 신성이다. 말로 하기 때문이다. 말이 가지는 신성함이 우리 보수주의가 지켜야 할 것이다. 도덕, 가족, 국방, 애민,... 이런 게 아니다. 

 

우리 보수가 지향하는 자유나 개인은 모두 신 앞에서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그 보편성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 초월적인 존재인 신이 없다면, 파편화된 개인이나 자유는 모두 악마적인 것이 된다. 아무리 간단한 사안조차도 절대 합의되지 않고 항상 분쟁을 앞두기 때문에 영원한 전쟁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통치하지 않는 자리에는 리바이어던이라도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그것이 보다 덜 악한 것이니까.

 

우리 보수주의의 딜레마는 신과의 분리, 기독교와의 분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계속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초월성에 대한 믿음과 이해, 사상적 정립이 없으면 보수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아무것도 지킬 게 없기 때문이다.

 

 

태양은 빛을 무한히 뿜어내지만, 달은 항상 빛을 가둔다. 이 둘은 인간에게는 같은 빛이다. 그리고 어둠이 내린 때 밝은 달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국가의 근원인 신보다 국가에 더 쉽게 맹종하게 된다. 신이라는 초월성이 없으면 아무리 완벽한 국가라도 언제나 재앙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런 모습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나라가 북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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