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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사회비평] 거리에 널부러진 쓰레기(Feat. 영화 조커)

by Rovin Son 2023. 8. 18.

 오랜만에 글을 쓴다. 내가 이전에 써왔던 어떤 글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깊은  내부로 부터 파멸하고 있고, 어쩌면 해소되지 않는 대중들의 분노가 혁명과 같은

정말 끔찍한 상황으로 치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는 그 글이다.

 

예전 조커 평론에도 썼지만, 조커는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화다. 영화를 몰라서 이해를 못하는게 아니다.

인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을 이해한다는건 뭐냐... 고통을 안다는 것이다. 

자연이 무한히 만들어내는 혼돈을 이겨내고 인간은 늘 질서를 만들어 낸다. 

끊임 없이 혼돈이 확산되는 엔트로피를 다시 질서로 재정립해야하는 인간의 운명은, 인간을 늘 고통의 굴레에 가둔다.

인간의 번뇌는 죽음에 직면해야 해소 된다. 아니라면 자연 발생적인 혼돈을 (인간의 질서 내부에서도 혼돈은 끊임없이 재발생한다) 모두 받아들일 수 있을정도로 큰 배포를 가져야 한다. 그러면 그 안에서는 괜찮다. 

 요즘 사회에 분노에 찬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무턱대고 사람을 죽이고, 내일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나는 인간을 정말로 알고 싶었고, 신은 내게 고통을 주었다. 지혜와 고통이 다른 말이 아니더라. 그러다보니 그런 사람들에 대한 한편의 이해도 든다. 누구나 자기 생명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아끼고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없는 자연의 이치다. 그러나 왜 그 사람들은 남을 파괴하는 일로 인해 자신의 삶까지 파괴해야만 했을까. 도무지 '파괴'가 아니고서는 그 에너지를 해소할 수단이 없었을까.

 

 나에게는 이해관한 몇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로는 영화 조커 평론을 쓸 때 알게 됐던 그것이다. 내가 각잡고 쓴 평론들은 '나'라는 개인이 썼다기 보다는 어떤 영적인 존재나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쓰였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조커, 오징어게임, 기생충) 특히 조커는 그걸 전혀 평론으로 쓰거나 할 생각이 없었는데, 내 안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나 절망감이 내 영혼과 삶을 완전히 잠식해 관통하면서 '조커'를 알게 됐다. 다행히 내 안에는 더 깊은 곳에 믿음의 뿌리를 내린 생명의 나무가 있어 그 바람을 지나 어느정도는 회복할 수 있었다.

조커는 그래서 썼다. 그 당시의 나는 조커 그 자체였다. 그런 어떤 영적인 힘으로 먼저 조커를 알게 되고 난 뒤 다시 영화를 보게 됐다. 모든 것이 보였다. 정말 모든 씬이 다보였다. 그 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고, 조커의 혼돈이 이해되지 않고 두려웠다. 그저 두렵기만 하고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진 바운더리는 조커의 그것을 더 뛰어넘는다. 그렇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조커를 보거나 내가 쓴 조커 평론을 읽으면 전율을 느낀다. 피로 쓴 글이기 때문이다. 이런 글들은 '아 너무 잘썼다... 멋지다' 이런 느낌이 아니다. 영혼이 울리고 무너질 것 같다. 니체가 피로 쓴 글만이 글이라는 건 이런 뜻인데, 고통으로 써야 안다. 글도 인생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커 영화 첫 장면이 '미화원 파업으로 인해 도시에 쓰레기가 쌓여간다...'는 식으로 첫 장면이 시작한다. 사회가 하나의 유기체적인 조직인데, 출구가 없다는 뜻이다. 인간이 만들어질때 가장먼저 만들어 지는 기관이 '항문'이다. 뭐든지 들어오는게 중요한게 아니다. 나가는게 중요하다. 출구가 없는 사회에서 똥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사라지나? 결국 막힌 항문에서부터 계속 쌓일 뿐이다.

그렇게 조커를 보면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려고 했던 사람들이 짓밟히는걸 계속해서 볼 수 있다. 사회에서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해 상류층 구역까지 쓰레기가 쌓여가는 것처럼, 조커의 분노도 배출구를 찾지못해 계속해서 쌓여만 간다.

 

 그 쓰레기들이 처음에는 숨죽여 쌓여있지만 계속해서 배출되지 못하면 대장에서 난리가 나듯이 그 분노도 폭발하게 된다. 만약 항문이 완전히 막혀있다면, 그런 상황에서 계속 내장에 배설물이 쌓여간다면 어떻게 될까? 방법은 하나 뿐이다. 입으로 가야 한다. 조커가 왜 머레이 쇼로 향했을까? 입이기 때문이다.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을 음미할 입이 가장 더럽고 추접스러운 것이 오가는 장소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순리대로 배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일들은 이 사람들에게 출구가 없기 때문이다. 왜 가장 생산성 높고 자기 자신이나 가정에 봉사해야할 그 나이대의 남자가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한 두명이면 우린 그걸 '정신병'이라고 부르지만 그게 다수가 되면 '사회현상'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탈출할 곳이 없었고 배에서 가스가 터지듯 터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 누적 반복되면 배설물은 결국 입으로 올라가게 돼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남성성' 그 자체를 죄악시 한다. 본능이 질서를 통해 융합되고 해소되고 재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부정되는 상황이라면, 그에게는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것과 같다. 누군들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겠나?

 

이게 영화일 뿐일까? 인간사는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나 우주나 다 연결 돼 있다. 인간이 마음에서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한 예로 한국 사회의 배출구가 없는 가장 큰 증거는, 공공장소에 쓰레기통 하나 없는 현실이다. 공공장소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먼 길을 그걸 들고 움직여야만 한다. 이해가 어렵나? 자기 집 외에 화장실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해보면 된다. 그것과 똑같으니까. 결국 거리는 온통 쓰레기장이 되고, 똥오줌 범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많던 쓰레기통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급똥 상황을 강제로 일주일 한달 일년씩 참게 해보면 누구나 '조커'가 된다.

과연 개인만의 일일까?

조커는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더라도 이 분노를 표출하고 해소하고 싶은 것이다.

급똥(분노)을 해결한 조커의 표정이 얼마나 차분한가.

 

똥은 항문이든 입이든 어디로든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나가려고 의지 그 자체가 잘못일까? 

무작정 모든 것을 틀어막고 가두려고 한 그것은 아닐까?

 

공공장소에 쓰레기통을 다시 가져다 놓아라.

사람들을 억압한 것들을 풀어주어라.

그러지 않으면 이 에너지는 한 두명이 아니라

집단의 에너지가 되어 결국 한 사회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위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모든 분들이 조속히 피해에서 회복되어 사회로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 혹시 다시 보고 싶어할 분들을 위해 평론 구매 링크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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